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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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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동한 담임목사 설교일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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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상은 작성일20-09-12 21:56 조회1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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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역 지침으로 인해 유튜브 예배를 드립니다.

농협 100096-51-002641 대중교회(장로교) 이체시 성함과 헌금명(십일조, 감사 등) 표기 9/13(주일) 대중교회 온라인 주일 예배 사회/설교: 최동한 목사 기도: 양진호 장로 지휘: 김혜연 집사 성가: 박동선 집사 반주: 정연주 집사 찬양: 박형관, 서정욱, 정연진 집사 예배의 부름 찬송 39장 사도신경 찬송 292장 기도 성경봉독: 요한복음 18:36-38 설교 "세상과 성도" 찬송 171장 / 1절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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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한담임목사님의 댓글

    최동한담임목사

    세상과 성도    요 18:36-38      2020 9 13 주일오전
    삶을 빗대어 표현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흐르는 강물로 표현을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삶은 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지나갑니다. 또 시계로 비유를 합니다. 그래서 시계바늘이 돌고 도는 것처럼 시간도 인생도 돌고 도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기도합니다.
    그렇지 삶이 반복적인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또 삶을 모래시계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래시계의 윗부분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빠져나갑니다. 우리의 삶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부분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빠지는 부분은 아래칸에 쌓입니다.
    없어지고 지나가나 그러나 동시에 쌓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즉 지나간 시간과 삶은 없어지고 지나가지만 그러나 그 시간과 삶은 오늘 나에게 쌓여 있습니다. 오늘의 시간과 삶은 지난날 보낸 시간과 삶의 결과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래시계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삶의 실체를 잘 이해하는 면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도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도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가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반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만 다르지 세상의 모습은 늘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역사도 지나가기만 하는 것도 시계바늘처럼 반복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나간 역사는 현재의 모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세상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속에 과거의 역사가 쌓여 총체적으로 나타난 모습이 세상의 현재의 모습 인 것입니다.

    세상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서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변화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지나간 세상의 역사가 쌓여 만들어온 결과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세상은 심판의 대상, 우리는 나그네 떠나서 만자지 않을 세상인가?
    반대로 세상을 소중히 여겨 여기에 모든 소망을 두며 하나 되어 할까?
    세상은 미워해야 하나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청년의 때 명확하게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과 말씀은 그런 기준을 제시해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늘 백성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이 무죄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반역죄로 고소했습니다.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답변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3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거역한 세상이었습니다.
    세상은 마땅히 섬기고 따라야 할 하나님을 원수 맺으며 지내왔습니다.
    그것은 지금 예수님을 대하는 주변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대행하여 통치하는 총독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형을 내립니다.
    불의한 재판입니다.
    하나님께 더욱 진실해야 할 대제사장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억울한 반역죄를 누명을 씌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군중들은 진짜 죄수였던 바라바를 놓아주게 하고 오히려 자신들을 위해 헌신했던 예수님을 죽음에 넘겼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때 그런 일 생긴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나온 세상 역사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일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악한 세상과는 다른 나라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인 우리는 악한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성도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속에서 부름 받아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모슨 과거 역사가 쌓여진 모래 더미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거기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어떻게 세상에 대한 관점을 가져하는가를 알려주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백성임을 의식하는 거룩한 의식이 필요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예) 알렉산더의 전쟁
    알렉산더 왕이 이끄는 군대가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군인들은 패전을 결심이라도 한 듯 힘없이 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알렉산더 왕은
    그 이유를 재빠르게 알아차렸습니다.
    군인들이 여러 전투에서 얻은 노획물들을 몸에 잔뜩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짐으로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군인들의 행군을 멈추게 하고 알렉산더는 노획물들을 모두 모와 불태울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에 군인들은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명령에 불복종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획물들을 버림으로 짐이 가벼워진 군사들은 기운을 다시 회복하였고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승리를 거머쥐게 되자 불평을 늘어놓던 병사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극찬했습니다.

    분명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 들이지요
    우리는 거기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실체를 신앙의 관점을 잘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세상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하지 않도록 유의하며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들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세상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불의하며 악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상을 버리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상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37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그럼에도 세상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망가지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위하여 오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버렸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으나 세상을 위하신 분이셨습니다.

    마치 탕자의 비유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바라던 그런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탕자는 집을 나갈 때 그는 가정과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이 아니지만 아들을 사랑합니다.
    그 아들을 위하여 밖에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를 다시 아들의 자라에 앉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나타내시고 실행 하신 것입니다.
    많은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 되었던 세상 그럼에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세상은 자식과 같습니다. 비록 잘못되었으나 사랑하고 회복되기를 바라는 탕자와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예)세계 2차 대전이 벌어졌을 당시 독일군은 유럽으로 진격하며 폴란드를 공격했습니다. 폴란드를 순식간에 점령한 독일군은 곧바로 유태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학교로 들어가 수업중인 학생들을 모두 수용소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수업 도중 들이닥친 독일군에 놀라서 모두 두려움에 질려 있었습니다.
    당시 유태인 반을 맡고 있던 코르작이란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울며불며 끌려가는 모습을 보던 선생님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독일군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난 이 교실의 선생인데, 유태인은 아니지만 나도 가겠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아이들만 보낼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의외의 행동에 아이들은 물론 독일군까지도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로하며 함께 기도를 드리면서 수용소로 들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만 수용소로 보낼 수 없다던 선생님은 결국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스실까지 함께 들어갔습니다.
    수용소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코르작 선생님을 ‘진정한 스승’이라고 불렀고, 훗날 독일이 패전국이 되고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들을 위해 세워진 기념관 입구에는 제자들을 양팔로 꼭 안고 있는 코르작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코르작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진정한 스승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훌륭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세상을 위한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은 심판 받을 곳, 사라질 곳 이렇게 치부하기도 합니다.
    분명 세상은 잘못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이렇게 세상을 위하여 이 땅에서 오셨으며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을 통해서 세상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도된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에서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사랑의 실천, 말씀의 가치관으로 만드는 삶을 통하여 그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이일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3 우리는 세상에 진리를 세워가는 사람들입니다.

    37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진리는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는 것이 참된 진리입니다.
    세상은 진리가 아닌 것으로 기준을 삼습니다. 삶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내려온 진리, 예수님을 통하여 진리가 세상에 전해지고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삽니다.
    동시에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듣고 그 진리에 따라 걷습니다.

    예) 복음의 봇짐장수 ‘권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게 만든 뿌리에는 권서들이 있다. 권서는 ‘성경책이나 전도책자 등을 사서 읽도록 권하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 최초의 권서는 ‘한국 교회의 요람’으로 불리는 소래교회를 설립했던 서상륜이다. 그는 1882년 10월 로스 선교사가 만주에서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와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권서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도처에서 온갖 경멸과 모욕,핍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종종 서양귀신에 씌웠다면서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머리가 깨지고 얼굴이 터져 피범벅이 되었다. 심지어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한 권의 성경보다 한 줌의 쌀’이 더 필요한 것 같았지만 권서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민족의 살 길이며 이 땅의 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생명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악착같이 성경을 팔았습니다.

    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증언자가 되셨듯이 오늘 우리를 이 일에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위하여 진리를 증언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사람들이 따르는 그것이 자신들이 믿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예배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왕으로 삼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삽니다.
    세상은 우리를 통하여 진리 되신 예수님과 하나님을 보고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여 주 예수를 따름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함이요 동시에 세상을 고치는 치료의 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세상은 어떻게 여기고 대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주의 나라에는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실체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세상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사 세상에 주의 나라의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하셨으며 동시에 세상을 위하는 일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교회와 성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진리가 다시 세워지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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