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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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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동한 담임목사 설교일 202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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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상은 작성일20-03-01 11:55 조회21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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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설교 본문: 출애굽기 15:22-27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댓글목록

  • 최동한담임목사님의 댓글

    최동한담임목사

    나는 너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임이라 출 15:22-27  2020 3 1 주일오전

    용감하게 넘어져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걸음마가 좀 늦게 걸었습니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혼자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은 아이 나름대로는 굉장히 큰일이고 변화입니다.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지요
    자 이렇게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있는데 무엇일까요
    그것은 넘어지는 것입니다. 많이 넘어지고 엉덩방아 찌고 해야 일어서서 걸을 수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을 주저하면 일어서 걸을 수 없습니다.
    요감하게 넘어지기도 해야 일어서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과 힘든 상황들이 있습니다. 현재의 나라와 우리의 환경이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을 좀 더 담대하게 맞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무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넘어짐을 통해서 일어서고 걷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담대하게 삶의 문제를 믿음으로 감당할 때 일어서거 걷는 회복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넘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아이 옆에 늘 언제가 부모가 있어 지켜보고 일어서 걸을 수 있도록 하듯히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고치시고 치료하셔서 다시 걷게 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문입니다.
    출애굽기는 크게 4가지 부문으로 나옵니다. 첫 부분은 애굽에서 나오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광야를 지나는 광야 여행의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시내 산에 도착해서 하나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 그리고 네 번째 성막을 짓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기를 사랑의 이야기로 이해를 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용감한 형제가 악당에 사로잡힌 여인을 구출한 이야기이고 광야여행은 서로 교제를 하는 기간, 시내산 언약과 율법은 결혼식, 그리고 성막은 같이 사는 신혼집에서 사는 것으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광야의 길은 이제 하나님을 만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교제를 이제 막 시작하는 부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광야는 불편한 것도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광야 사흘 길을 갔는데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수르광야지역입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광야길은 불편합니다. 힘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광야에서 물으주시고 만나로 양식을 주시고 그 길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성한 물이 있는 곳 엘림에 이르게 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광야와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가운데서 생수를 마시게 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게 길로 만드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광야길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광야의 길에서 주시는 은혜는 어떤 것입니까?
    1 기도의 응답으로 역사 하십니다.

    간절히 바려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요
    휠체어 앉아 생활하는 한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선반위에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과자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여인이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서 그 과자를 집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필요하고 원하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것이 이루이지는 삶이 체험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요사이 이 나라에 이런 치료의 기적이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일어난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물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이 있는 곳을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물이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마라의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만드신 첫 기적의 역사가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 모든 상황을 맡기며 기도했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쓴 물입니다. 하나님께 이 모든 상황을 맡기면 기도한 것입니다.
    광야는 의지할 것이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돌보시고 인도자가 되십니다. 기도생활은 광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은 광야의 하나님 백성 됨을 기억해야합니다. 

    예) 어떤 중학생이 바다에 떠밀려서 구조를 받았습니다. 바다위에서 30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수영을 잘 못합니다. 어떻게 바다에서 버텼냐하면 학교에서 배운 생존수영으로 버텼습니다.
    생존수영은 몸에 힘을 빼고 눕는 것입니다. 물에 내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핵심은 힘을 빼고 물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럼 신기하게 뜹니다.
    제가 작년 여름에 휴가 때 해봤어요. 진짜 됩니다. 신기하게 말이지요.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물결위에 위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 믿어 주의 백성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이 소명의 길 가운데 기도하는 모든 기도에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고든 맥도날드가 쓴 베스트셀러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한쪽은 충동에 이끌리는 삶입니다. 또 다른 쪽은 ‘소명’에 이끌리는 삶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하루하루를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와 상처도 생깁니다.
    소명에 이끌리는 삶은 삶의 중요한 우선순위 가치를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삶입니다. 순간적인 상황이나 감정에 삶의 요동되지 않습니다. 여론에 너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기의 부르심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의탁하고 그분을 따른 삶의 결과를 기대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어나면 아침에 손을 꼭 잡습니다,
    힘든 시간에는 더 손을 꽉 잡습니다.
    손을 꽉잡으면 내가 내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손을 잡아 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개인적이 경험이에요. 어떤 때에는 등도 두드려 주시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도 두드려 주셨어요
    (나만의 행복한 믿음의 상상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손을 잡으면 아마 낯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기도생활과 예배 생활이 위축되지 않게 하시기를 권면합니다.
    모임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목장모임도 못하고 주중예배도 쉽지 않습니다.
    성경공부모임이나 다른 행사를 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다. 경배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을 주인 삼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소명의 길 가운데 필요한 모든 기도에 하나님 응답 하실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26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치료하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내용과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스라엘이 그동안 경험한 하나님은 은혜를 주로 고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 고통을 주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것입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해바다에서 애굽군대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뒤가 안전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그런데 어쨌든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는 상당부분이 재앙을 내리고 죽고 이런 역사였습니다. 그런 능력을 애굽에 베푼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본 하나님은 힘이 세고 나쁜사람들 손을 봐주시는 분 이런 모습입니다. 사랑해주고 치료해주고 살리고 이런 모습은 잘 못 본 것이지요.
    그러니까 맛이 쓴 물을 고칠 것을 잘 기대가 안 되었던 모양입니다. 차라리 모세가 강이 피가 되는 먹는 물을 못 먹는 물을 만드는 것은 해도 못먹는 물을 먹는 물을 만드는 것은 할것이라고 기대가 안되는 이런 마음이었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 되심을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못 먹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고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전부가 아닙니다.
    계시록에서 심판이 자꾸 나오니까 하나님은 마지막에 심판만 하시는 하나님 같아 보여서 무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 치료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따라서 쓴 물을 고친다는 의미에서 치료의 하나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믿음을 온전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암에 걸렸습니다.
    아버님 집사님 고치려고 온 가족이 나오지 않던 교회 다 나왔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혹시 고쳐주지 않을까 해서 나온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좀 고쳐주셔야지요. 아니 그런데 집사님 하늘나라로 불러 가셨습니다. 에누리도 없이 예상시간대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이 가족 분들 눈을 못 마주치는 거예요. 좀 낫고 그래야 되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가족들이 계속 교회를 잘 나옵니다. 이제 다시 안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시간이 한 참 지나서 가족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요사이 좀 어떠십니까?
    집사님 보내시고 힘드시지 않으세요. 네 좀 힘들긴 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이 더 많습니다. 
    무엇이요 감사하지요
    우리 아버님 때문에 우리 가족이 다 예수 믿게 되어서 구원 받고 하나님 백성 되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영혼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지요. 육신의 치료만 치료가 아니지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황폐한 영혼이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지난번에 몸이 좀 아픈 다음에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무엇인가 쓸모 없는 게 빠진 것 같아요 설명할 수 없는 치료와 회복이 있었습니다.
    나름 은혜가 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유행하는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속히 건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에 섭리 가운데 이 나라 이 민족의 많은 부분에서 치료하시는 과정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께 희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광야는 힘든 곳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도 힘든 일이 없습니까?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출애굽기 15장은 노래로 찬양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1절 20절 노래하고 춤추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옵니다.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어떻게 노래하고 춤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좋은 분위기가 3일까지만 갔습니다. 사흘간 3일간 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광야는 부족하고 힘든 것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이런 광야의 길 가운데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경험케 하십니다. 쓴 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게 하시고 반석에 물이 나오게 하십니다. 하늘의 만나로 양식을 주십니다. 적들을 물리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오히려 힘든 광야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길이 됩니다. 희망이 있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가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광야의 길 가운데서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린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하고 같이 살아도 되겠구나! 삶을 함께해도 후회가 없겠구나!
    결혼을 허락하는 신랑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결단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은 엘림이라는 희망의 장소로 인도하십니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마라에서 엘림은 약 11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조금 더 가니까 엘림이 있던 것입니다.
    거기는 물 샘이 열둘입니다. 하나만 있어도 굉장한 것인데 12이면 아주 대박 난 것이지요. 오아시스입니다.
    조금 더 가니까 엘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엘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마라에서 원망하고 포기하면 엘림의 풍성한 오아시스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마라에서 쓴물을 단물로 만드셔서 그 물로 갈증을 해소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그 앞에 풍성한 엘림의 풍성한 오아시시를 준비해 두신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이지요 그래서 좋은 장점도 되지만 조금만 더 인내하면 좋아질 수 있는 것을 놓칠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 사람들의 성품을 보면서 선교사님이 인내 할 수 있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한답니다. “하나님이 인내가 부족합니다. 인내할 수 있게 해주세요. 지금 바로 주세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 요사이 조금 힘드십니까?
    하나님께 감당케 하실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엘림이 있습니다. 광야는 힘든 것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참고 가면 엘림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인내하시고 신앙생활 잘 감당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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